마음의 달 - 천양희 마음의 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 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8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 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은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시골버스 - 손택수 시골버스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다 기사양반 소피나 좀 보고 가세 더러는 장바구니를 두고 내린 할머니가 손주놈 같은 기사의 눈치를 살피고 억새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싱글벙글쑈 김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슬..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마음의 정거장 - 김명인 마음의 정거장 집들도 처마를 이어 키를 낮추는 때 절은 국도변 따라 한 아이가 간다 그리움이여, 마음의 정거장 저편에 널 세워두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 저기 밥집 앞에서 제재소 끝으로 허술히 몰려가는 대낮의 먼지바람 십일월인데 한겨울처럼 춥다 햇볕도 처마 밑까지는 따라..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마음 고치려다 - 이명수 마음 고치려다 널다리 건너 개심사(開心寺)에 갔습니다 산속으로 난 찻길 버리고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입구에서 부터 돌계단 108개쯤 밟고 갔습니다 세심(洗心), 개심(開心) 하는 일이 어디 쉬운 노릇입니까 외나무 널다리 건너는 일만큼만 된다면야 밤새 건너고 또 건너겠지만 ..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등잔 - 신달자 등잔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걸친 , 엄마 - 이경림 걸친 , 엄마 한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샘가에서 - 이성복 샘가에서 어찌 당신을 스치는 일이 돌연이겠습니까 오랜 옛날 당신에게서 떠나온 후 어두운 곳을 헤매던 일이 저만의 추억이겠습니까 지금 당신은 저의 몸에 젖지 않으므로 저는 깨끗합니다 저의 깨끗함이 어찌 자랑이겠습니까 서러움의 깊은 골을 파며 저는 당신 가슴 속을 흐르지만 ..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편지 - 천상병 편지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말아 주길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6
화분 - 김시천 화분 어쩌다가 화분을 깼다 깨진 화분그릇의 조각을 줍다가 마음도 그릇 같은 것이라면, 혹 내가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깨뜨린 적은 없는지 내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은 조각으로 깨어져 흩어졌을 것이며 그 안에 담겼던 꽃나무와 그 잔뿌리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마음.. 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2012.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