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관하여 얘야, 그릇은 담아내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인생살이란다 어머니의 손은 젖을 대로 젖어서 좀처럼 마를 것 같지 않다 젖은 손을 맞잡고 문득 펴 보았을 때 빈 손바닥 강줄기로 흐르는 손금 긴 여행인 듯 패여 왔구나 접시들은 더러움을 나눠 가지며 조금씩 깨끗해진다 헹궈낸 접시를 마른 행주로 닦아내는 어머니의 잔손질, 햇살도 꺾여 차곡차곡 접시에 쌓인다 왜 어머니는 오래된 그릇을 버리지 못했을까 환한 잇몸의 그릇들 촘촘히 포개진다 나도 저 그릇처럼 닦아졌던가 말없이 어머니는 눈물 같은 물기만 정성스레 닦아낸다 그릇 하나 깨끗하게 찬장으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