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건널목 어스름 저녁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다가 잠시 멈춘다 건널목, 빨간 신호등이다 가쁜 숨 한 박자를 쉬면서 목덜미에 얹히는 찬바람을 단속하고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긴 시간이다 그리움도 生의 한 신호등이라면 내 그리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것이다 너에게 ..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6.02.29
두물머리의 작은 이야기 두물머리의 작은 이야기 세상이 온통 눈밭으로 변한 어느 날 아침 양평 두물머리의 새하얀 눈밭 위 희미한 점점으로 남아있는 비틀거린 발자국의 끝 꽁꽁 언 채로 화강암 돋을새김만큼이나 딱딱해진 작은 목숨 한때는 아름답게 반짝였을 깃털 위에 층층이 쌓인 하얀 침묵 강변 마른 풀 ..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6.02.20
나란히 누워 나란히 누워 사랑하는 이여, 하루가 다해가는 시간 먼저 잠든 네 곁에 누워 어둠속에서 나는 먼 풀밭을 바라본다 흩어진 사금파리 같은 묵은 기억들이 아지랑이 피듯 아른거린다 싱그러운 풀냄새 가득한 그곳, 어둠엔들 연한 풀꽃 향 흘러 나비 날고 꽃술에 벌 앉는 것이 보이지 않으리 ..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2
찹쌀떡 만들기 찹쌀떡 만들기 살아가는 일은 조금씩 둥글어져 가는 것, 모난 것들이 닳아 둥글어지는 것이란다 둥글어지면서 작아지고 작게 둥글어지면서 부드러워지는 것이란다 부드러워져 말랑말랑해지면 몸은 비록 작아도 넓은 가슴으로 한 아름 보듬을 수 있는 것이란다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2
부러진 꽃송이 부러진 꽃송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더러운 손길에 꺾인 두 송이 꽃 한 겨울 차가운 흙속에서 한 겨울 차가운 개울물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더러운 발길에 짓밟힌 작은 꽃 한 송이 또 한 송이 - 이 땅에 어린이 유괴가 다시는 없기를 -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2
바위섬 바위섬 상처였다, 제 몸의 상처일 것이다 그것이 상처가 아니라면 구태여 바다가 저럴 리 없다 가슬가슬한 상처가 한 점 흔적 없이 아물도록 바다는 부드러운 혓바닥으로 저토록 열심히 상처를 적시고 있는 것이다 상처도 제 몸의 것이라 밤낮없이 핥고 있는 것이다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2
낮은 목소리로 낮은 목소리로 수평선의 저녁 태양을 바라본다 눈부심도 헛된 번짐도 없는 주황빛 알몸의 먼 고요함 黙言의 바다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내게도 나의 태양이 있어 어느 저녁 날에는 옅은 빛으로 마주하여 서 있고 싶다 알몸이어도 작은 부끄러움만으로 충분한 눈부시지 않는 시간에..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0
그녀 그녀 그녀는 나를 사랑했네, 오롯한 그 사랑을 나는 늘 몰라 했네 그녀 나를 떠나갈 때, 파군재 고개 넘어 그녀 떠나 갈 때 나의 울음은 목을 넘고 그녀의 사랑은 고개를 넘었다네 바나나 우유를 좋아했던 그녀 그녀,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 딸을 낳았고 그 딸은 막내딸이라는 이름을 얻었..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0
한라봉 한 알, 이파리 한 잎 한라봉 한 알, 이파리 한 잎 탁자 위 한라봉 한 알 꼭지에 이파리 하나 달려 있다 주황색 밝은 빛깔에 녹색 한 잎의 여유 보기에 좋다, 정물화 같이 서로 다른 것끼리의 조화로움이여, 그래, 때로는 네가 아니면 내가 서로의 곁에 작게 붙어 있기만 해도 좋을 때가 있겠구나 다른 빛깔로도 .. 시와 시조/바람의 소리 이후의 詩 2012.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