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의 마음 아비의 마음 벼이삭 흩어진 들녘 아들은 보이지 않고 아비만 서 있다 외다리 디딘 목 타버린 울음으로 헤진 가슴 처진 어깨 가누며 두 팔 활짝 허수를 기다리고 있다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4
흔들바위 앞에서 흔들바위 앞에서 흔들어라, 흔들어라 억겁(億劫)의 세월을 흔들어라 보아라, 찰나에 무너져 떨어질 곳 있는 지 흔들어라, 흔들어라 무량(無量)의 세월을 흔들어라 넘쳐 흘러내릴 때까지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4
그 곳의 이야기 그 곳의 이야기 그 곳에는 불빛이 있었다 쌍쌍으로 모래밭을 걷는 젊은이들에게서의 풋풋하면서도 그윽한 불빛과 횟집과 술집과 호텔의 네온사인에서 쏟아지는 울긋불긋한 불빛과 짬짬이 뒤척이던 파도가 몸을 일으켜 다시 누울 때마다 토해내는 하얀빛이 있었다 흐드러진 불빛에 취했..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4
그리운 것들 그리운 것들 앞산 중턱의 띄엄띄엄 붉은 진달래 황톳길의 털거덕털거덕 소달구지 개울가의 타닥타닥 빨래소리 앞마당의 꼬꼬댁 꼬꼬댁 암탉들과 장닭 담벼락 풀꽃 위로 나폴나폴 노랑나비 한 마리 툇마루 위의 햇볕 한 조각 졸음 한 조각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4
새 즈믄의 첫날 새 즈믄의 첫날 오늘 뜨는 해가 어제의 해와 무엇이 다를까마는 먹다 남은 사과에 붙은 개미떼처럼 새벽바람에 묻어오는 파도냄새를 맡으며 사람들은 그렇게 바닷가 바위벽에 덜 깬 눈을 비비며 붙어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의 눈이 부끄러웠을까 새 즈믄의 해는 갓 태어날 때의 주황빛 모..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4
까치밥 까치밥 무슨 설움이더냐 무슨 까닭으로 붉게 남았더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감나무 한 그루 산바람 싸늘하게 가지 끝에 맴도는데 아,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마른나무 언 가지에서 너는 붉고 나는 그저 서럽다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3
불회귀선(不回歸線)을 위한 서시 不回歸線을 위한 序詩 비 오는 날 창밖 풍경은 젖는다는 것 그 날의 가로등 불빛 비 오던 그 날, 창밖으로 희미하게 비치던 너의 그림자 돌아서는 길, 어디선가 들려오던 라디오 연속극의 주제가 서유석의 목소리로 그림자, 하얀 그림자 흥건한 길 위에서 젖을 수밖에 없던 그 그림자 유행..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3
별이 있는 밤 별이 있는 밤 별이 무너져 내린다 손으로 담을 수 없어 눈으로 담았다 눈으로 겨우 담을 만큼 별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손으로 담기에는 별빛이 너무 시린 탓이었다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3
궁남지에서 궁남지에서 그 옛날 연봉오리 달빛에 수줍게 접히던 어디쯤에서 우리 만났으리 버들가지 달그림자에 잠기고 바람향기 머물던 그곳 아, 천년의 날수로 핀 연꽃송이여 그 날, 그 세월 누가 우리 사랑 기억하여 말하리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3
우체통의 노래 우체통의 노래 한낮의 물상들이 어둠에 잠겨가듯 사라지노니 ‘그대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나의 영혼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늦도록 시집을 뒤적여 찾은 말을 슬쩍 끼워 넣으며 밤새 몇 번이고 고쳐 쓴 꽃무늬 편지에 며칠을 같이 두근거리는 일도 이제는 낯설고 ‘아버님, 어머님 저는 .. 시와 시조/ 詩集 바람의 소리 201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