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결에 관하여 - 조창환

동솔밭 촌장 2014. 8. 2. 16:20

 

 

 

 

 

       결에 관하여

 

 

 

       나무에만 결이 있는 게 아니라
       돌에도 결이 있는 걸 알고 난 후
       오래된 비석을 보면 손으로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돌의 결에 맞추어 잘 쪼아낸
       글씨를 보면
       돌을 파서 글자를 새긴 것이 아니라
       글자를 끌어안고 돌의 결이
       몸부림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기억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같은
       파르르 떨다 파득거리다
       이제사 먼지 속에 가라앉은 것들
       목숨이 제 결을 따라
       고꾸라진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무거운 밤 내 앞에 있는 목숨
       마주 보며 나는
       혹 한 번쯤 더 고꾸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어느 무거운 밤, 어둠 속에서
       오래된 비석 같은
       흔적, 결 따라 파인, 쓰다듬을 때
       지나간 시간들, 큰 결 따라
       흔들리는 무늬였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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