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조/향기가 있는 詩

그릇에 관하여 - 윤성택

동솔밭 촌장 2012. 3. 20. 13:46

 

 

그릇에 관하여    

         

얘야그릇은 담아내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인생살이란다

 

어머니의 손은 젖을 대로 젖어서

좀처럼 마를 것 같지 않다

젖은 손을 맞잡고 문득 펴 보았을 때

빈 손바닥 강줄기로 흐르는 손금

긴 여행인 듯 패여 왔구나

 

접시들은 더러움을 나눠 가지며

조금씩 깨끗해진다

헹궈낸 접시를 마른 행주로 닦아내는

어머니의 잔손질햇살도 꺾여

차곡차곡 접시에 쌓인다

왜 어머니는 

오래된 그릇을 버리지 못했을까

환한 잇몸의 그릇들

촘촘히 포개진다

나도 저 그릇처럼 닦아졌던가

말없이 어머니는 눈물 같은 물기만

정성스레 닦아낸다

 

그릇 하나 깨끗하게 찬장으로 올라간다

 

 

 

                   

'시와 시조 > 향기가 있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0) 2012.03.20
가족 - 윤제림  (0) 2012.03.20
비빔밥 - 고운기  (0) 2012.03.20
섬말 시편 ( 잎 ) - 김신용  (0) 2012.03.19
묵혀둔 길을 열고 - 옥경운  (0) 201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