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올해도 봄이 왔다가 가고 있다.
어쩌다 보니 올봄에는 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에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십년 남짓한 세월동안 거의 같은 곳에서 살다가
환경이 다른 곳으로 옮겼더니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고 챙겨야 할 일도 많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봄이 왔는지 가는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핑계인 듯한 생각도 들지만 이사하기 전의 준비부터 이사 한참 후까지
어수선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다가 오늘 문득 ‘봄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가끔 근교의 산이나 가까운 태종대에서 산책을 하면서 차오르는 숨을 돌리려
아무렇게나 나무에 기대어 아무 생각이나 하면서 봄의 풋내를 맡기도 하고, 몸을 열기를 주저하던
목련의 하얀 봉오리가 살포시 풀어지는 것을 보기도 하면서 봄을 지냈다.
여기 불긋, 저기 불긋한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며칠 후면 지방선거가 있다. 지난 주말부터 정치판이 무척 시끄럽다. 선거운동으로 시끌벅적한
상태에서 제1야당대표인 박근혜씨의 피습사건과 그에 대한 성형 운운...’한 발언과 피습사건을
풍자한 모 시인의 시로 인해 정치판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더욱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그 시를 읽어 봤는데 제목이 자극적이고 내용 역시 선택한 어휘들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시를 쓸 때 시인의 뜻을 충분히 글에 녹이기 위해 필요하면 원색적인 단어도 쓰고 이른바
육두문자를 쓸 수도 있지만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글을 읽고 난 후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일주일 후 지방선거가 끝나면 달력상으로는 여름이다. 유월에 들어서면 온 나라에, 온 세계에 월드컵
축구 바람이 일 것이다.
정치하는 모든 이들이 ‘국민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라고 한다.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오로지 ‘대한민국’ 이름 하나만으로 뛰는 축구선수들의 마음, 순수한 열정으로
그들에게 응원과 성원을 보내는 마음. 그 마음들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정치인들에게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는 봄이지만 아직은 봄이다.
-2006. 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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