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한 생각

그림

동솔밭 촌장 2012. 3. 7. 19:32

 

 

몇년 전의 일이다.

 

건물 1층 로비의 한쪽 벽에 장막을 치고 공사를 하고 있어서 

 

'무슨 공사를 또 할까?’ 했었다.

 

로비 바닥이며 벽, 천장 할 것 없이 다 걷어내고 대대적으로

 

개보수 공사를 한 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사나흘 지났을까?

 

로비를 지나갈 때 두어 사람이 그 쪽을 쳐다 보길래

 

무심결에 얼굴을 돌렸더니 못 보던 대형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 저 그림을 걸려고 공사했구나’ 생각하면서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림에는 유치원생 정도의 그릴 능력과 그 수준 정도의 보는 눈밖에 없는

 

사람이라서 어떤 뜻을 담고 있는 그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자면 작은 넝마를 여러 개 포개어서

 

늘어 놓은 것을 그린 것 같았다.

 

‘저것이 무슨 그림이지? 넝마를 그린건가?’하면서 중얼거렸더니

 

나보다 먼저 그쪽을 쳐다보고 있던 직원이 듣고는

 

"아이고. 저 그림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그림 참 좋다 ’라고

 

하셔야지요.

 

값이 몇백만원쯤 된다던데 돈 들어 간 공을 생각해야지요"라고


농담삼아 말하기에 서로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나중에 2천만원 정도라고 들었다)

 

퇴근하면서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더니 그린 것이 아니라

 

작은 천 조각을 매듭지어 고리 사슬처럼 이어 놓은 작품이었다.

 

작품명과 작가 이름이 명판의 옆에 붙어 있었다.

 

이런 작품을 칭하는 미술용어는 모르지만 하여튼 추상적인 작품이었다.

 

오래 전에 프랑스에 출장갔다가 오는 길에 하루정도 시간이 있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워낙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곳이라 나도 자연스럽게 가보게 되었다.


일부 전시관이 공사하느라 폐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마간산 하듯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관람했는데도 3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해 온(약탈품도 많을 테지만) 유물과 예술품의

 

방대한 량에 놀랐다.


방문전에는 학교다닐 때 미술책이나 매스컴 등을 통해 알려진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진품을 보니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았다.


내 눈 높이가 그 정도 밖에 안되는 탓일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욕을 먹어도 어쩔 수가 없는 일지만.

 

위대한 화가와 작품을 모독했다고 예술가들은 욕할지 모르지만.

 

작품명은 생각나지 않지만 큰 한쪽 벽을 다 가릴 만큼 엄청나게 큰 유화를 보고

 

‘ 우와. 대단한 그림이네’ 라고 생각한 것이 유일한 감흥이라고 할까?

 

그것도 작품을 알고 느낀 것이 아니라 크기와 그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였던 노력과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그림책이나 사진을 통해서 눈에 익어서 그랬는지 그 유명한 모나리자와

 

비너스의 조각상을 보고도 덤덤했으니...

 

(모나리자가 있는 곳과 비너스 조각상이 있는 곳에는 관람객이  각각의 장소로

 

쉽게 갈 수 있도록 따로 안내표시가 되어있었다. 특히 모나리자는 유일하게

 

유리상자로 보호되어 있었다) 


사실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관람객 수를 보고 ’관람료 수입이 엄청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눈으로 로비에 걸려있는 작품을 보았으니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기는커녕 넝마조각 붙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내가 클래식 음악이나 그림에 대해 무식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로비에 그림이 걸리기 얼마 전에 지인에게 책 두 권을 선물 받았다.


그림을 전공한 작가가 국내외 화가들의 그림과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고 

 

있는 책이었다.

 

내가 잘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이었으나 독특한 내용인데다가 딱딱하지 않고

 

글쓴이의 개인적인 감상과 신변의 일들을 겸해 쓴 글이라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딱 좋은 책이었다.

 

책을 손에 잡으면 짬짬이 읽는 것이 아니라 한달음에 읽는 습관인데다가 비교적

 

글을 빨리 읽는 편이다.

 

그렇지만 첫 그림과 설명을 읽어보고는 그렇게 읽다가는 무식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책상 위에 얹어놓고 틈날 때마다 짬짬이 그리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한 쪽, 어떤 때는 서너 쪽을 읽었는데 두 권을 끝까지 읽는데 거의 한 달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되풀이 읽으면 좀 더 나을까 싶어서 생각나면 또 읽고 다시 한달 쯤 걸렸으니

 

어지간히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앞으로도 생각나면 또 읽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이나 배경 등의 설명을 읽어서 그런지


미술 책이나 여기저기에서 봤던 낯익은 그림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그림에 대한 안목이 조금 생긴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그 생각이 착각이란 것을 저 넝마작품(?)이

 

증명하고 말았다.


나의 무식함이 두 권의 책으로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알게 된 것 같았는데...

 

힘들게 책을 보내준 사람의 마음을 저버리고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준 넝마작품을 고맙게 생각해야할 지 원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작가의 뜻과는 무관하게

 

내가 그 작품을 기억하는 한 내게는 넝마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배운 것, 들은 것, 본 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느낀 것이

 

적지 않을 것이고 축적된 지식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전문가 수준의 지식은 아니더라도 예술이든 문학이든

 

어떤 분야에서든지 한 두 마디 정도 거들 정도의 상식은 있기 마련인데

 

기껏 관람료 수입이나 생각하고 넝마로만 보이니 스스로도 한심하다.

 

사람이란 스스로의 단점과 결점 또는 잘못 된 것을 인정하기가 참 힘들다고 한다.


나도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최소한 미술을 보는 눈이 형편없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했으니 최소한 한 가지 힘든 것은 덜어낸 셈이다.

 

물론 더 덜어내야 할 것이 아직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남만큼은 안다는 착각과 아집에 사로잡혀

 

별 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지식인 양 아직도 그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아직 나이를 덜 먹은 탓인 지도 모르겠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흰 머리카락이 꽤 많아진 만큼의

 

나이도 든 것 같은데.

 

 

- 04. 07.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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