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밤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내 아이가
돌돌 감고 혼자 잔다 잠결에
나는 또 아버지 이불을 뺏어 칭칭
몸에 감고 잔다
아버지는 혼자 아버지를 덮고 주무신다
아버지라는 이불이 추우신지 웅크리고
가끔 마른 기침을 하신다
깜짝 잠이 들어버린 뒷마당
또래의 꾀양나무는 하얗게 세어가고
내 나이 한 살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 섣달 그믐밤
긴 밤 꿈을 꾸며
꿈을 잃어가며 밤새도록 지금 나는
아버지가 되어 가는 중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그 아득한 행간에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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