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그녀는 나를 사랑했네, 오롯한 그 사랑을 나는
늘 몰라 했네
그녀 나를 떠나갈 때,
파군재 고개 넘어 그녀 떠나 갈 때
나의 울음은 목을 넘고
그녀의 사랑은 고개를 넘었다네
바나나 우유를 좋아했던 그녀
그녀,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 딸을 낳았고
그 딸은 막내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네
버스 뒤로 마을은 뽀얀 먼지에 잠기는데
뼈 화석처럼 박힌 돌부리에 채여 덜컹거리던
버스에 누워
내 울음江을 저으며 기어코 고개 넘던 그녀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에 누워 있는 그녀
대청마루에서 저들끼리 놀던 황토먼지와
적당히 낮게 두 다리 뻗고 있는 나무 시렁
그 위, 절은 이불과 베개들
지붕 낮은 다락방에서 주황빛 고운 홍시를 꺼내던
주름진 손
바나나 우유처럼 달콤했던 그녀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 오늘 그녀 곁의 누런 잔디밭에
노오랗게 익은 바나나 우유를 뿌린다네
고개를 넘기 전 그녀의 마지막 목 넘김은
막내딸의 첫 아들이 준
바나나 우유 한 모금이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