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솔밭 촌장 2012. 4. 1. 12:48

 

1일차

 

여름휴가지로 '칠갑산'으로 정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칠갑산'이란 지명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시작되는 노래가사가 생각나서 정했다.

칠갑산으로 가는 길에 공주를 거쳐가게 되었는데 무령왕릉에 들러 백제의 옛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첫날은 숙소인 자연휴양림에 머물렀다.

 

 

2일차

 

칠갑산 산행길에 나섰다. 휴양림에서 바로 칠갑산 정상으로 4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 있었다.

아내와 딸이 부담스러워 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재촉하여 출발 했는데 한 5분쯤 올라갔더니

뱀이 많다는 팻말이 보인다. 아내가 질겁을 하고 돌아가잔다.

TV 화면에 뱀이 비치기만 해도 채널을 돌리거나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니 오죽할까.

한여름이고 산행이 목적이 아니어서 그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했다. 칠갑산장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산 중턱 이상 높이에 산장이 있고 차로 이동이 가능했다.

산장에서 정상까지의 3km 조금 넘는 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평탄하여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칠갑산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는 만나지 못하고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조선말의 우국지사이자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이다.

또 특이한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청양향약'을 새긴 것이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번 읽어 보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을 되새겨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 면암 최익현 선생(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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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암 최익현 선생 약력 안내문 (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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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양 향약비 (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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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쉽게 걸어 왔으니 마지막에 약간의 땀을 흘리고 가라는 뜻인지 정상 직전에 가파른

계단이 있다. 세어보다가 숫자를 잊어버렸다. 대략 300개쯤 되는 것 같다.

계단의 끝이 칠갑산 정상이다.


  * 칠갑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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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정상 (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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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휴양림에서 얻은 청양군내 관광 팜플렛을 보니 근처에 식물원(고운식물원)이 있었다.

칠갑산의 장곡사에 가기 전에 식물원 부터 들렀다.

입장료가 조금 비싼 듯 했지만 휴양림의 팜플렛으로 할인 받을 수 있었다.

막상 둘러보니 그 넓은 면적에 들인 공을 생각하면 입장료에 연연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뿔싸, 디카의 배터리가 다 소모되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부주의를 탓할 수 밖에.

휴대폰으로 찍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취사시설이 되어 있는 몇 채의 방갈로에서 숙박도 가능하다고 하니 꽃 향기 속에서

지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장소이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와서 하루 지냈으면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장곡사로 향했다.

 

칠갑산 장곡사의 대웅전들이다. 굳이 '들'이라는 복수형을 쓴 까닭은 특이하게도

이 절에는 대웅전이 두 군데 있다. 왜 두 곳의 대웅전이 있게 되었는 지는 확실치가 않다.

휴대폰으로 찍었는데 그나마 괜찮게 찍힌 것 같다.

 

* 상 대웅전 (0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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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대웅전 (0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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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대웅전에서 상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애틋한 상사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대웅전의 사연을 전하는 듯.

양 대웅전의 정면도 서로 어긋난 방향으로 향해 있다.

 

 * 상사화 (0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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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은 퇴색되고 문틀마저 성치 않는 설선당(說禪堂).

절을 찾는 이가 많지 않은 듯 하다. 그저 세월의 더께가 가볍지 않음을 알 뿐.

설선당이라....

글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선인데 구태여 선을 말하랴?

 

 * 설선당(說禪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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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을 이고 절 마당 한 쪽에 홀로 붉은 배롱나무(목백일홍)가 이채롭다.

* 배롱나무 (0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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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휴가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내려가는 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부여(옛 사비성)에 가기로 했다.

청양을 벗어나기 직전 특이한 가로등이 보인다.

고추가 유명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가로등에 붉은 고추가 달렸다.

'청양 고추'라 했던가? 허, 그놈의 고추 매끈하게 잘 생겼다.

 

 * 고추 가로등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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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잠시 비가 내려 시원해질 것을 기대했는데 어중간하게 내리는 바람에 오히려 습도만

높아져 무덥다.

부여에 들어서자 연꽃 축제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부여는 29년만에 다시 온 셈이다.

돌아보니 참 긴 세월이다.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란 뜻의 궁남지(宮南池)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넓은 연못이 온통 연꽃 천지다.

이렇게 많은 연꽃이 한자리에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일본서기>에 '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하니

지금은 옛 모습을 잃었지만 백제 당시에는 이보다 훨씬 잘 꾸며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 궁남지의 연꽃 1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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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남지의 연꽃 2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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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만 있는 줄 았았는데 한 쪽에 부용꽃도 활짝 피어 있다. 부용꽃은 말로만 들어 보았을 뿐

실물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꽃이 이렇게 클줄 몰랐다.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이 훤하다. 꽃을 보고 있자니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부용꽃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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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가 보이길래 올라가서 물을 저어 올리려고 했더니 쉽지 않다. 아차 실수하면 발을 다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 궁남지의 수차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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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말 야은 길재의 시조이다.

비록 부여가 고려의수도인 개성처럼 오백년의 도읍지는 아니지만 7백년 백제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로서 백수십년을 지냈다. 백제가 망한 지 (서기 660년) 1300년이 훨씬 지났으니

어찌 인걸만 간데 없으랴, 산천마저 옛 모습을 찾기 힘들터.

그저 절터만 남은 곳에 우뚝 솟아있는 탑을 보고 옛 영화를 짐작하고 숙연해질 밖에.

 

*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9호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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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유물이나 유적'하면 떠오르는 것이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가 아닐까?

그에 비해 '부여의 유물이나 유적'이라 하면 ?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낙화암, 백마강, 고란사, 부소산성' 정도를 말할 것 같다.

백제에 대해서는  망국의 이미지만 너무 강하다. 특히 의자왕과 삼천궁녀, 낙화암의

이미지가 7백년 역사를 짙게 덮고 있다.

백제=의자왕=낙화암=삼천궁녀로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백제의 멸망 후 몇 년 후 고구려도 멸망(서기 668년)했다. 그러나 신라가 차지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구려 땅이 머지않아 건국한 발해에 이해 상당 부분이 계승되었다.

하지만 백제는 멸망 후 긴 세월동안  많은 것들이 잊혀지고 묻혀져 버렸다.

망국의 한이야 망한 어느나라엔들 없으랴만 오늘날에도 잊혀져 가고 있음이니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부소산성 길-낙화암 방향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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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서 낙화암과 고란사 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다. 비록 완만한 경사지만 더위 때문에 지치기

딱 좋을 만큼이다.

걸어가는 내내 백제의 마지막 날을 생각했다. 마지막 항전과 성이 함락되기 직전의 절박했을

그 당시의 광경이 눈에 차오른다.  

 

그늘길을 따라 왔지만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발이 무거워져 이제나 저제나 할 때쯤 낙화암에

도착했다. 발 아래 백마강만 무심하게 흐르고 유람선 몇 척이 손님을 기다린다.

낙화암 옆으로 고란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지친 몸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려니 마음이 무겁다.

그 길의 초임에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그늘에 앉아 혼자말 처럼 중얼거린다.

'다시 올라 올걸 뭐 하러 내려가?'

 

* 고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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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의 약수로 갈증을 달래고 돌아서니 절 뒷편의 벽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역사의 애달픈 한 장면이다.

 

* 고란사 벽화 중의 하나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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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각의 화려한 단청을 보며 잠시 땀을 식힌다.

 

 *고란사 영종각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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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의 종소리가 슬픈 옛 영혼을 위로하리라 믿으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매표소 입구쪽으로 되돌아 오는 길은 의외로 금방 내려왔다. 올라 갈 때를 생각하면 어이 없을 정도로

짧은 길, 짧은 시간으로 느껴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