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이어져 있나?
이사온 지 두달 남짓 되었다.
새로 이사온 곳의 가까이에 이기대(二妓臺)라는 바다 풍광이 멋진 곳이 있어 생수 한 병과 디카를 들고
나섰다. 이기대 일대는 오랫동안 군사상의 이유로 막혀있다가 십여 년 전에 개방되었고 이후에
해안가를 따라 산책길을 다듬어 놓았다.
바다가 하는 말과 산물이 흘러 내리면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으로 보아 옛날 어느 때의 기생과 관계있는 듯 하나 몇가지 설로만
떠돌 뿐 정확한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다.
* 이기대 바다 (060709)
3호 태풍 '에위니아'가 접근 중이어서 공간에 긴장감이 퍼지고 있지만 아직은 비도 바람도 없이
조용하다. 폭풍전야는 고요하다더니.....
흐리고 습하지만 따가운 볕이 없으니 걷기엔 오히려 낫다.
장마철의 비에 딸려온 흙탕물이 섞여서 연안의 바닷물이 흐리다.
* 광안대교 (060709)
얼마전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로 뽑힌 광안대로의 주인인 광안대교이다.
광안리 해변과 나란히 달리며 바닷물에 두 다리로 버티어 서 있는 광안대교는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
오늘은 흐린 탓에, 말하자면 '사진발'이 안받아서 단지 커다란 구조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해운대의 아파트군이 회색빛으로 서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다리와 아파트가 다를바 없지만 완공된 후의 결과는 판이하다.
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간의 먼 공간을 좁혀주는 반면에 아파트는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고 단절된 거리 이상의 다가갈 수 없는 간격을 만든다.
그리고 단지 조금 편리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광풍이 몰아치기도 하는 그 단절된 공간으로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다.
그 속에서 나도 '너도 나도' 중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 이기대 해안 산책로의 다리 (06070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정연종 님의 '섬' 중에서)
육지에서 멀지 않은 섬이거나 서로 멀지 않은 섬 사이에는 다리가 놓인다.
다리가 놓이면 섬이면서도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오늘의 산책길에 섬은 없었지만 다리가 있었다.
* 노란 우산의 주인은 어디가고? (060709)
누가 떨어뜨린 것일까? 모르긴 해도 한 어린아이가 '아차' 하는 순간에 놓쳤으리라.
그리고 그 어린아이는 틀림없이 여자 아이였을 것이다.
왜 어린 여자 아이라 생각하느냐고?
' 아가씨' 또는 '여자'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소년'이나 '남자'가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것이 그럴 듯 한 것 같아서....
* 해운대 달맞이 고개 방향 (060709)
저 멀리 해운대의 달맞이 고개가 보인다. 부산사람으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달맞이 고개에서 맞이하는 정월 대보름달은 특히나 크고 아름답다고 한다.
'쟁반같이 둥근달'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불쑥 솟아 오를 때의 아름다움이야 오죽하겠는가?
안타깝게도 내겐 아직 보지 못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달맞이 고개의 언덕 위로 게딱지 같이 잔뜩 눌어붙은 집들을 보고 있자니 내 등이 무겁다.
뭔가 감당하지 못할 무게가 내 등에 얹혀 있는 것 같다. 달님인들 가볍게 떠오를까?
지난 봄이던가, 달맞이 고개 근방의 재개발로 인한 이해당사자들의 다툼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 바다와 산의 만남 (060709)
'장자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바다와 육지가 물로써 이어져 있다.
민물이 짠물이 되고 그 짠물이 다시 민물이 되어 흐르는....
* 동굴의 낙수(落水) (060709)
동굴이 있다는 푯말이 있다.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동굴이라기에 깊은 굴을 생각했더니 먼 옛날에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몸으로 몸으로 부딪치며
만든 흔적같은 곳이다.. 굴 입구의 상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굴속에서 울림으로 되돌아 나와
무척 크게 들린다.
갑자기 찬 기운이 쏟아져 나오더니 뒷덜미가 서늘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 산책로의 지압길 (060709)
* 나의 발바닥은 아팠다 (060709)
'지압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곳. 맨발로 걷는 애들을 보고 나도 양말을 벗었다.
돌 하나 하나 밟을 때마다 묵직한 통증이 발바닥을 통해 온 몸으로 퍼진다. 채 한 걸음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발바닥이 아프다. 엉거주춤 걷다가 결국 중간쯤에서 포기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지나가는 말을 한다.
'발바닥이 많이 아프면 건강하지 못하다던데....'
* 나리꽃 (060709)
나리꽃 한송이가 바위틈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만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을 꽃도 알고 나도 안다.
'기다림은 /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 좋다' ( 서정윤 님의 '홀로서기' 중에서)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나를 기다려 주는 그 무엇' 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 들꽃 (060709)
몰라도 상관이 없다. 단지 그들은 피어 있었고 나는 보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