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바퀴 - 전남진
보조바퀴
보조바퀴를 뗀다
바퀴보다 더 많이 구른 바퀴
쓰러지는 바퀴를 세우던 바퀴
쓰러지는 바퀴 대신 상처를 받아낸 바퀴
만난 길이 모두 상처가 된 바퀴
그래서 모든 길이 문신이 된 바퀴
상자에 담긴다
두발로 탈 수 있다며
보조바퀴를 떼 달라고 아이들이 떼를 썼지만
나조차도 모를 이유로 떼지 않았던 보조 바퀴
오늘 뗀다
뗀 자리 깨끗한 새살이 눈부시다
보조 바퀴를 뗀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이 달린다
전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젠 거추장스러워진 보조 바퀴를 떼고
두 발로 더 빨리 달린다
나를 받치던 보조 바퀴
아주 오래된
이미 쓸쓸해진 보조 바퀴
나를 키운 그 자리에서 아직도 나를 기다린다
보조 바퀴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를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은 채
기다린다
그 바퀴 뗀 자리 아직 환한데
이제 더는 누구도 받쳐주지 못하는
녹슬고 병든 바퀴
세상을 달리다 지치고 상처날 나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오래된 보조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