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솔밭 촌장 2012. 3. 14. 17:36

 

 

 

          편지를 써 본지 참 오래되었다. 아니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쓴다'는 표현보다 '두드린다' 는 표현이 맞겠지만 요즈음에도 편지를 쓰긴 쓴다.

 

         우표를 사서 붙일 필요가 없고 우체통까지 가는 수고도 필요 없는 컴퓨터 메일인 e- 메일이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필요성과 편의성 때문에 e- 메일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 메일은 작성이나 전달의 형태를 달리할 뿐 편지임에 분명한데도

 

         관념적으로  '편지'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의 뇌 속이 현실의 빠른 변화에 맞추어 착착 바뀌고 있지 않는 탓이다.

 

         e- 메일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것이 편지라고 하기 보다 메모 전달 같이 느껴진다.

 

        공중전화 박스에 붙어 있던 '용건만 간단히'란 표어 같은 기분이랄까?  그러면서도 내가

 

        e- 메일을 이용하는 이유는 요즈음의 추세에 맞추기 위함보다 나의 필체가 엉망인 까닭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e- 메일은 그것을 감출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을 제공해준다.

 

        그런 이유로 손으로 쓰는 편지 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e- 메일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편지'라고 하면 아무래도 종이에 직접 쓴 것을 떠올리게 된다. e- 메일은

 

        '쓴다'는 표현보다 '만든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리고 편지는 만드는 것이

 

        아니고 쓰는 것이니까.

 

        같은 내용이라도 컴퓨터의 화면으로 읽는 것과 필기도구로 쓰여진 글자를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기억력이 지속되는 시간의 차이도 다르다. 물론 쓰여진 글자로 읽을 때의 기억이 내겐 오래간다.  

 

        이런 형태의 편지 외에 나는 또 다른 종류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형태의 편지는 아니다.

 

        오늘 책상에 앉아 조용히 그 편지를 썼다. 보이지 않는 백지 한 장을 깔고 눈을 감고....

 

        봄볕에 졸거나 땡볕에 헉헉거린 내용을 쓸 때도 있고, 단풍 고운 숲의 향을 맡거나 지는 잎을

 

        무심코 바라본 일을 적을 때도 있다.

 

        겨울 백사장의 쓸쓸함을 밟고 지나가며 소금기 머금은 찬바람을 마신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또 그림자 따라오듯 과거의 일들이 따라 오기도 하고 먼 훗날의 일들이 언뜻 스쳐 가기도 한다.

 

        지나가는 예쁜 여자에게 한마디쯤 말을 붙여 보는 일도 있고 젊은 연인들이 깔깔거리는

 

        다정한 장면도 양념처럼 들어있다.

 

        가끔 말도 되지 않는 상상과 희망이 적혀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복권이 '1등에 당첨된다면?' 하는 등이다. 이유도 없이 혼자 욕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아파한 내용도 있다.

 

        그 편지에 무엇을 쓰던 나를 탓할 사람도 없고 무엇을 쓰던 나의 자유다. 쓰고 있는 동안 누가

 

        볼 염려도 없고 쓰고 나서 보낼 필요도 없다. 보내고 싶으면 스팸메일처럼 내 마음대로 받을

 

        사람을 정해서 보내면 그 뿐이다. 실제로 받게될 사람이 없으니 잘못 전달될 걱정도 없다.

 

        일부러 찢어 버리거나 지울 필요도 없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기억에서 지워진다.

 

        참 편리한 편지가 아닌가?

 

        오늘 모처럼 만에 그 편지를 썼다. 눈이 온다는 소식은 없었지만 눈이 내릴 듯한 날씨다.

 

        한 낮이지만 하늘이 흐려 적당히 어둡고 춥지 않은 바람이 약간 분다. 말미에 '이럴 때 아무에게서라도

 

        좋으니 편지가 오면 좋겠다' 라고 쓰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 2004. 12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