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통도사
절 마당 한 모퉁이, 늙은 배롱나무 한 그루
시간이 멈춘 듯
온 몸에 이끼를 두르고 있다
배롱나무 한 生의 외투인 것이다
언젠가의 날에 저 마저도 내려놓을,
어리석은 중생이 나무의 生을 들여다본다
한 벌 외투 밖으로 삐져나온 여린 가지마다
來生이 여물고 있다
더운 날에도 환해지기 위해
겨울 들어서기 바쁘게 여물기 시작한 것이다
미리미리 여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배롱나무 옆으로 젊은 중이 지나간다
귀에는 휴대폰이 걸려있다
21세기의 절집, 염불소리 풍경소리만 들리랴
휴대폰 소리도 들릴 수 있다
바쁘면 서방세계와도 휴대폰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이다
‘법문이 끝났으니 보살님들은 밖으로 나가셔서
대웅전을 한 바퀴 돌고 새해 달력을 받아 가십시오’
때로는 잿밥에 눈이 어두울 때가 있는 법이다
밖에 있던 한 중생이 보살님들을 따라
적멸보궁을
시곗바늘과 함께 한 바퀴 길게 돌았다